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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정복하기

커피지도사가 알려주는 커피 이론 정복하기 [세계의 커피 하우스 2]

by 쏭주부 2024. 12. 24.

5) 이교도의 음료 커피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유럽에서는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국가의 수중에 있는 팔레스티나(Palestina)예루살렘(Jerusalem)을 찾기 위해 A.D. 12세기 초 여덟차례에 걸쳐 원정을 강행하였는데 이때 십자군 병사들은 이슬람 지역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 보게 되었지만 유럽에 돌아와서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자유롭게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이 끝나고 유럽에서 새로운 문예부흥이 일어나면서 종교의 교리에 묶여 이교도의 음료로 금기시 되어온 커피에 대해 관대해지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처럼 커피가 유행처럼 번져나자 중세 교회의 기득권 계층에서 교리를 내세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1600년대 초 로마교황인 클레멘트 8세(Clemens Ⅷ, 1592~1605) 에게 커피는 사탄의 음료이므로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클레멘트 8세는 직접 커피를 마셔 보기로 하고 한 번 마셔 보았는데 뜻밖의 향기로운 풍미에 감탄하여 커피에 세례를 내리고 기독교도의 음료로 명하였다. 이때부터 커피는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되었고, 1625년에는 로마에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클레멘스 8세

제231대 교황(재위 1592. 1. 30∼1605. 3. 3). 가톨릭 개혁운동 시대의 마지막 교황. 앙리 4세를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또한 에스파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썼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톨릭 개혁을 지지하였고 불가타 성서의 개정본을 만들어 표준성서로 공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클레멘스 8세 [Clemens VII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6)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

1615년 유럽에 커피가 들어오면서 베네치아 상인들이 커피를 구입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1610 유럽에 차(茶)가 처음 판매되고 몇 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1528년에 스페인 사람들이 코코아를 신대륙에서 가져온 후 수 십년이 지나서이다.

 커피가 이탈리아에 처음 선보였을 때, 몇몇 성직자는 커피가 이교도의 음료이며, 사탄의 음료이므로 음용을 금지해달라고 하였으나 교황 클레멘트 8세가 판결에 앞서 문제의 대상인 커피를 마셔본 후 독특하고 신비로운 커피에 반하여 진정한 크리스천의 음료가 되기 위해 세례를 주고 커피를 즐기게 하였다.

 처음에 커피는 고가의 약으로 간주하였으며 레모네이드(lemonade) 행상인들이 대부분 커피를 판매하였다. 최초의 커피하우스 보테자 델 카페(Bottega del Caffe)는 1683년 베니스에 문을 열었는데, 입증되지 않았지만 1645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172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하우스로 알려진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플로리아노 프란세스카리(Floriano Francescari)에 의해 산 마르코(Pizza Sam Marco) 광장에 개점되었다.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 1720년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영업 중이다.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는 여전히 카페(caffes)라 불리며, 유럽이외의 지역에서는 카페(cafes)라고 불렸다.

그 후 커피하우스는 대부분이 베니스에 있었지만 이탈리아 전역에 급격히 증가하였다. 진청한 터키식 커피를 제안한 첫 번째 인물은 지오르고 쿼드리(Giorgo Quadri)이며, 1775년에 커피숍을 오픈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듀 디 토스카니아(Duc di Toscania) 구눚에 의해 러시아 황제인 탐머라노(Tamerlano), 판테 디 다이아나(Fantae di Diana), 다메 베네테(Dame Venete), 패이스(Pace), 아르보 피아스트렐레(Arabo Piastrelle)로 이어졌다.

 

 

7) 영국의 커피하우스

영국의 첫 번째 커피하우스는 1650년 제이콥(Jacob)이 런던이 아닌 옥스퍼드(Oxford)

12세기에 헨리 2세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는 중소도시 옥스퍼드에 산재해 있던 학교들을 통합하면서 대학 도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13세기에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등이 생기면서 신학 부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베일리얼 대학과 머튼 대학이 생기고 14세기에는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옥스퍼드 문예부흥의 중심 역할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스퍼드 [Oxford]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엔젤 커피하우스(Angel coffee house)를 열었으며, 페니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ies)로 불리워졌는데 그 이유는 입장할 때 페니를 지불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약 4년 후 두 번째 커피하우스인 시궈스 존슨(Ciques Johnson) 역시 옥스퍼드에 문을 열었으며, 옥스퍼드 울소울대학 부근의 개인 하우스에 커피클럽이 생겨났고 나중에는 로얄소사이어티(Royal Society)가 형성되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이즈미르(lzmir)에서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르주(州)의 주도(州都).

 

커피 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Pasqua Roses)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는데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런전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콘힐(Cornill)의 외곽지대에 있는 세인트 미셀 앨리(Sts. Michel Alley)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문을 연 엔젤 커피숍은 런던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공인받게 되었고, 그 후에 오픈되는 마노은 커피하우스의 모델이 되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드본(Devon)의 액셔터(Exeter)에 위치한 몰 커피하우스(Mol's coffee House)는 월터 라레이그(Walter Raleigh) 총리가 몰 커피하우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곤 하였던 곳이다.

 런던에서 현존하는 커피하우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ioyd's)가 타워시내(Tower street) 중심가에 위치한 곳에 문을 열고, 그 후 롬바르드 금융 중심가(Lombard street)에 2번째로 문을 열었다. 로이드(Lloyd) 보험회사는 커피하우스를 경영한 이후 오늘날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날로 좋아져 1715년에는 런던에 무려 2,000여개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성업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 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는데 어떤 커피 하우스가 성업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 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는데 어떤 커피 하우스 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 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변호사, 의사, 아일랜드인, 군인, 노름꾼, 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다.

 

 

8) 네덜란드의 커피하우스

베니스에서와는 달리 네덜란드의 커피하우스는 번성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주로 가정에서 커피를 마셨다. 북유럽의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식민지에서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상술을 지니고 있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커피를 독점하려고 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1666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Amsterdam)에 커피하우스가 최초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