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국의 커피하우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차(茶)를 주로 마셔왔으나 미국 독립의 계기가 된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1668년 기록된 문헌에는 미국 최초의 커피는 설탕 또는 꿀과 시나몬을 겯들여 마셨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 후 커피하우스는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Boston), 그리고 그 밖의 도시에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미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1691년 보스턴에 문을 열었는데 런던 커피하우스(Londo coffee house)와 굿테리지 커피하우스(Gutteridge coffee house)가 바로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전해지고 있으며, 1696년 뉴욕 최초의 커피숍 더 킹스 암스 (The King's Arms)가 문을 열게 된다. 또한 1773년 보스턴 차(茶) 사건을 계획한 장소로 유명한 그린 드레곤 커피하우스(Green Dreagon Coffee House)이다. 1808년에 영국의 로이드 커피하우스를 모방한 5만달러 상당의 7층 규모의 호화로운 커피하우스의 탄생으로 보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비싸고, 가장 웅장한 커피하우스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규모는 당시 세계 최대를 자랑하였으나 10년만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뉴욕에서는 커피가 빠른 속도로 아침식사의 주요 음료로서 '머스트(must, 맥주의 일종)'를 대신하였으며, 커피 생두를 판매하는 상점이 1683년에 문을 열었다. 또한 윌리암 페냐William Penn)은 펜실베니아에서 뉴욕으로 커피를 주문하였다.
1696년 뉴욕에 최초로 더 킹스 암스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1730년에는 브로드웨이에 익스체인지 커피하우스(Exchange Coffee House)는 추후 머천다이즈 커피하우스(Merchandise Coffee House)에 병합되고, 다시 1784년에 뉴욕은행으로 변신하여, 1790년 최초로 주식을 판매한 장소가 되었다. 뉴욕의 윌스트리트(Wall street)와 워터가(Water streed)에 있는 톤틴(Tontine)은 10년동안 뉴욕 주식 거래의 중심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1700년에 최초로 예 커피하우스(ye coffee house)가 문을 열면서 런던 커피하우스(London coffee house)와 경쟁관계가 되었다. 미국 커피하우스들은 유럽과 달리 진보주의자들(공화주의, 자유주의)보다 보수주의자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간혹 공공건물이 없는 도시에서는 재판이나 의회토론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10) 오스트리아의 커피하우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튀르키예 군사들이 빈을 공격하자 시민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두 달 동안 적군과 대치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고 지쳐가던 시민들은 항복 할 수 밖에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든 순간 폴란드 출신의 장사꾼인 게오르크 콜시츠키(Georg Franz Kolschitzky)가 나타나 아랍인 행세를 하고 오스만의 노래를 부르며 터키 군사 지역을 자유롭게 통과하여,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곧 빈에 도착한다" 라는 소식을 전하여 빈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 후 1683년 빈이 오스만 투르크의 포위에서 풀려난 뒤 성 밖의 터키 군이 남기고 간 포대 중에 이상한 곡식이 있었는데 아랍 문화에 익숙한 콜시츠키는 이것이 '커피'임을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하였다.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콜시츠키에게 감사의 표시로 튀르키예 대사관에 있던 커피 생두와 커피기구, 저택 등을 하사 하자 그 저택을 커피하우스로 만들었다. 그는 '푸른 병 아래의 집(Hof zur Blauen Flasche)'이라는 빈 최초의 카페를 열고 기독교인들을 커피에 중독되게 만들었으며, 커피 가루를 걸러내고 우유를 첨가한 커피를 개발하여 빈 특유의 전통 커피를 탄생시켰다. 또한 콜시츠키는 1736년 오스트리아 황실로부터 20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부여 받기도 하였다. 당시 19개의 중산층을 위한 커피하우스와 돌아다니면서 물을 증류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톡 쏘는 음료를 증류하기도 하였고, 커피를 볶아서 팔기도 하였다.
커피하우스가 빈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후가 되면 정장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상류층의 유행으로 번지게 되었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비더마이어(Biedermeier) [ 독일문학에서 한 시기의 경향·형식을 나타내는 용어] 시대에 전성기를 맞으며, 내부를 벨벳(Velvet), 샹들리에(chandelier) 등으로 고급스럽게 장식하고 신문이나 당구대 등의 놀이 시설을 마련해 정치인과 예술인들의 몽미 장소로 각광을 받았으며 빈 주재 터키 대사관에서는 커피가 유럽 손님들을 대접하는 새로운 음료로 인기가 있었다.
2002년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이 캘리포니아 작은 창고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 마니아였던 그는 오스트리아 빈 최초의 카페 이름이 '푸른병 밑의 집'이었던 것에 착안해 브랜드명을 지었다. 1600년대 후반 빈 사람들은 전쟁 후 터키군이 남기고 간 파란 병 안에서 작은 알갱이를 발견했다. 다들 낙타 먹이라 생각했는데 프란츠 콜시츠키는 달랐다.아랍에 거주한 경험이 있던 그는 병 안의 물건이 커피콩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는 터키군이 남기고 간 커피를 모두 사들여 최초의 커피 전문점을 오픈했다. 이 가게 이름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브랜드 명을 '블로보틀'로 한 것은 최초의 커피숍, 그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브랜드의 상징 색이 그냥 블루가 아니라 '터키블루'인 것도 이 브랜드명의 유래에 그 이유가 있다. 사실 창업 당시부터 프리먼이 지금의 로고를 쓴것은 아니다. 초창기 블로보틀의 로고는 푸른 병에 "Blue bottle coffee co.'라는 글자가 쓰인 평범하고 다소 다소 산만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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