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티오피아의 커피 문화
에티오피아의 유목민들은 원래 커피 원두를 으깨어 동물의 지방과 섞어 떡처럼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노동 후에 원기회복을 위한 음식으로 먹었다. 집집마다 커피 볶는 도구를 두어 가정에서도 커피를 즐겼던 터키에서는 상류사회의 귀족들의 경우 커피 접견실을 따로 마련하여 손님 앞에서 원두를 볶아 차를 내는 일종의 커피 의례를 행하였는데 지금도 이 관습은 아랍권에 남아있다. 이런 연유로 고대 터키 가장들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집안에 커피를 늘 풍성하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고 만약, 이 의무를 게을리 하여 집에 커피가 떨어지게 하면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전통적인 예법이 있다. 이를 '분나 마프라트'라고 한다. 분나(bunna)는 에티오피아어로 커피를 뜻하며, 마프라트는 세레모니(Ceremony)를 뜻한다. 이 의식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우정의 표시로 두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에티오피아 식의 전통 환대이다. 분나 마프라트는 주로 젊은 여성이 아프리카의 전통의상인 네렐라(Nerela)라는 흰 숄을 걸치고 행한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레모니는 손님이 오는 시간에 맞춰 송진향이나 유칼립투스를 태워 연기를 내고 잘 씻어 말려 놓은 커피원두를 숯불로 정성껏 볶은 뒤 무께짜(Mukecha)라는 작은 절구에 넣고 빻는다. 그러고는 제베나(Jebena)라고 불리는 주전자에 커피 가루를 넣고 끓인 뒤 손잡이가 없는 '시니'라는 잔에 담아낸다. 모두 석 잔을 담는데
첫번째 잔은 아볼(우애의 맛), 두 번째 잔은 후에레타냐(평화의 잔), 세번째 잔은 베레카(축복의 잔)을 의미한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 의식 '분나 마프라트'
1. 행운을 불러온다는 케테마라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한다.
2. 의식을 행하는 여인이 전통의상인 네텔라를 입고 원두, 화로, 커피잔, 향 바구니, 향로를 준비하여 자리를 잡는다.
3. 숯불에 송진이나 유칼립투스를 태워 신성함을 표시한다.
4.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펀디샤(팝콘)나 다보(빵)를 제공한다.
5. 커피체리 껍질을 벗긴 뒤 손님 앞에서 깨끗이 씻어낸다.
6. 숯불로 태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생두를 볶아낸다.
7. 볶은 원두향을 손님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여 서로 얘기한다.
8. 잘 볶아진 원두를 절구로 곱게 빻은 뒤 제베나(주전자)에 넣고 넘치지 않게 끓인다.
9. 끓인 커피는 받침대로 옮겨 가루가 가라앉게 한다.
10. 커피는 3잔을 기본으로 제공하며 마시게 된다.
◆ 중세의 커피 문화
커피가 발견 된지 6백여년이 지난 A.D.1200년경, 회교도 셰이크 오마르가 큰 죄를 범해 예멘의 오사사 지방으로 유배당했다가 커피열매로 인해 사랑의 결실을 얻는다는 전설이 생겨날 즈음 커피는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원산지인 아비시니아(Abyssinia)에서 약재와 식료 및 음료로 쓰이던 커피원두는 홍해를 건너 이집트 카이로(Cairo), 아덴(Aden), 메카(Mecca)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A.D.1300년경에는 이란으로 그리고 A.D.1500년경에는 터키까지 전해지면서 커피 대중화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에 '나무 퍼블릭 애드버타이즈'라는 잡지는 커피를 가리켜 위생적, 의약적인 음료라고 소개하면서 커피의 효능은 체온유지, 소화촉진, 정신안정에 특효이며 투약시간은 이른 아침과 오후 3시쯤이 가장 좋다고 지적하였다.
커피는 중동의 산물로써 이슬람 교도들과 기독교 교도들은 커피를 칭찬하기도 하고 서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어느 곳에서는 커피가 세례를 받은 적도 있으며 아랍인들은 셰이크 샤델리(Sheikh Abou'I Hasan Schadheli)를 커피의 성인으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커피의 의학적인 효능을 치하한 의사 아비세나(Avicenna 980~1037)의 의학적에는 커피가 귀 아픈것 부터 눈의 긴장과 간의 질병까지도 모든 것을 치료한다고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라므이 많은 성직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도 시간 동안 들떠있게 만드는 인공적인 수단 이라고 비난하고 사원(mosque) 근처에서는 금지하였지만, 이내 사원 근처에서도 커피를 즐겨먹게 되었다.
또한, 순례자들을 통해 수출된 커피 맛은 이웃나라로 확산되어 커피음용이 기호이상의 관습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커피는 중세에도 각기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간의 교량역활을 톡톡히 하였다. 커피를 매개로 하여 서로 대화를 시작하고 우정을 나누기도 하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 것은 오늘날과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한잔의 커피를 앞에 놓고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중세 주부들의 불만 또한 대단했다. 커피 때문에 너무 시간을 빼앗겨 남편들이 늦게 귀가하고 가정에 소홀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항의하는 여성들 또한 남성들 뭇지않게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누구나 새삼 커피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 근대의 커피 문화
14세기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운동은 중세유럽의 예술과학문상의 혁신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 시기까지 이슬람문화권의 특정 계층에 한해 음용되던 커피는 우여 곡절을 겪으며 일반인에게까지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1454년에 아덴의 이슬람교 사제장인 게마르딘이 일반인도 커피를 마시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사제를 비롯한 특권층만 커피를 마실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1524년에는 메카와 메게나에서 한때 다방에 대한 영업 정지령이 내려지디고 했다.
30년 뒤인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 카페 카네스(Kaveh Kanes, 화려한 커피하우스)라는 다방이 등장하여 상인과 외교관들의 사교장으로 인기가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가는 교두보 역활을 하였다.
1605년 르네상스의 발상지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하여 교황 클레멘트 8세를 부추켜 커피를 못 마시게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악마의 음료를 마셔본 교황은 오히려 이 음료는 아주 훌륭하므로 이교도만의 음료로 두는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의 콧대를 꺾어주도록 하라고 말함으로써 커피를 둘러싼 악마의 시비를 진정시켰다.
유럽으로 건너간 커피는 17세기초부터 확산일로를 걷기 시작했으며, 1800년에는 프랑스에서 사이폰(syphon) 포트가 발명돼 커피는 일반대중의 기호식품으로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소비국인 미국에는 크리스토퍼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유럽인들이 행운을 찾기 위해 신대륙으로 몰려오면서 커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신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곧 그들의 영역에서 쫓겨났고 백인들의 관습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1614년에 네덜란드인들의 장막으로 새 도시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커피 이용의 첫번째 증거가 되는 곳이 현재의 뉴욕, 즉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다. 1696년 뉴욕에 첫번째 커피하우스인 더 킹스 암(The King's Arm)이 생겨났고, 1808년에는 7층 높이의 가장 큰 커피하우스인 엑스체인지 커피하우스(Exchange Coffee House)가 개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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