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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론 정복하기 [세계의 커피 전래 5]

by 쏭주부 2024. 12. 28.

◆ 하와이 (Hawaii) : 1820년경

 하와이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1820년 당시 하와이 왕이던 카메하메하(Kamehameha)의 개인 의사이자 통역관이던 스페인 사람 돈 프란시스코 드 파울레이 마린에 의해서이다.

 그는 호놀룰루에 정박 중이던 외부 선박들로부터 커피나무를 얻어서 호놀룰루 외곽 하우오아 계곡에 있던 자신의 정원에 심었다. 그의 농장은 상당히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린의 농장에 있던 야생 커피나무는 1970년대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커피 소개는 오아후섬(Oahu Island)의 통치자이던 보키에 의해서이며 그는 마노아 계곡(Manoa Valley)에 있던 자신의 땅(현재의 하와이 대학이 있는 곳)에 커피나무를 심었다. 보키는 당시의 왕이던 카메하메하 2세와 왕비 등 수행원들을 데리고 영국을 방문하였는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영국 사회는 이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등의 친절을 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둘은 홍역에 걸려 죽게 되자 영국인들은 조지 맨슨(George Anson)함장으로 하여금 군함 HMS BLONDE로 남은 하와이 사람들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군함이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정박하게 되는데 이때 보키는 30그루의 커피나무를 배에 싣고 돌아온다.

 코나 커피의 시작은 1825년 설탕재배업자 존 월킨스(John Wilinson)이 브라질 리오 지방에서 오아후 섬(Oahu Island) 모아나 밸리 지역으로 커피 종자를 들여오면서부터 시작된다.

 3년 후 이 커피 종자가 우연히 코나(Hawaiian Kona)지역에서 심어지게 되었고 비옥한 화산토양과 커피가 자라기에 좋은 기후조건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일궈낸 노력이 조화를 이뤄 마침내 그윽한 향기의 코나 지역 특유의 고급커피가 만들어진다. 1828년 소설가 마크 트윈(Mark Twain)은 '하와이로부터의 편지'라는 글귀 속에 '코나 커피의 맛과 향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기롭고 그윽하다'라고 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전래된 커피가 가장 먼저 번성한 곳은 카우아이 섬(Kauai .Ⅰ.)으로 대략 1835년에서 1945년경에 대규모의 커피 플렌테이션(Coffee Plantation)이 이루어졌으나 1850년대에 노동력의 부족, 기상이변, 마름병(Blight)이라고 하는 벌레 때문에 쇠퇴하게 된다.

썩거나 넘어지지 않으면서 열매·줄기·잎·꽃 등 식물 전체에 병징이 나타난다. 병이 들면 색이 변하고 말라 죽는다. 병원체는 곰팡이가 대부분이고, 토양이나 씨를 통하여 전염된다. 세균에 의하여 생기기도 하는데, 사과나무화상병이 그 예이다. 예방하려면 저항성이 있는 식물을 심거나 병에 걸리지 않은 식물과 씨를 심는다. 이와 함께 토양을 소독하고 보르도액(液)과 같은 살균제를 뿌려준다. 일단 마름병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그 부위를 없애고 태워 병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마름병의 일종인 감자역병은 일단 걸리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그 예로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에서는 1845년과 46년에 감자역병이 크게 발생하여 100만 명이 굶어죽고 150만 명 이상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름병 [bligh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카우아이 섬(Kauai Ⅰ.)의 커피 플렌테이션은 코나와 하마쿠와(Hamakua)에서 이어져 번성하게 된다.

처음 코나에 커피가 들어오게 된 것은 1828년 미국 선교사 사무엘 러글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상업적인 규모로 커피재배를 시작한 사람은 haole 하와이 언어 속에 담긴 단어 하나, "하올레(Haole)"는 그저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 이상의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라는 코카서스계 이민자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1860년대 부터 코나에는 가족 단위의 커피 플렌테이션이 본격화 되었다. 하와이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이민을 오게 되는데 원주민 하와이인, 중국 화교인, 포르투갈인, 필리핀인, 일본인, 한국인들이 모두 커피 플렌테이션을 했다고 한다.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 일본 사람들이다.

 가족 단위의 커피 플랜테이션이 이루어 지다 보니 커피 방학이라는 것이 생겨났는데, 코나의 아이들은 4~5세부터 커피체리 수확시 체리를 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6~9월 사이의 여름 방학대신 커피 수확기인 8~11월로 방학 기간을 변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커피방학이다.

 

하와이 코나

 

◆ 베트남 (Vietnam) : 1857년경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주로 하남(Ha Nam), 꽝빈(Quang Binh), 콘툼(Kontum) 지역의 카톨릭 교회에서 재배를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닥락(Daklak), 럼동(Lam Dong) 지역에 수천 헥타르 정도로 재배되었다.

 생산 품목은 아라비카 종보다는 품질이 낮고 값이 싼 로부스타 종이 많고 국가가 커피나무를 직접 소유하며, 베트남 전쟁 후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소수민족들에 의해 정책적으로 재배되기도 하였다.

 1963~1964년에 북부지역에 아라비카 종을 1,000ha 정도 재배하였으나 병충해로 실패하고 1964년부터 남부지역인 닥락(Daklak), 동나이(Dong Nai)에 8,000ha 정도의 로부스타 종을, 럼동(Lam Dong)에 1,700ha 정도의 아라비카 종을 재배하였으나 전체 생산량은 약 3,000~5,000톤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이 베트남의 커피산업에 투자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며, 프랑스 또한 합작 플랜테이션을 하기도 하였다.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는 다른 사회주의국가의 도움을 받아 고지대에 로부스타 종을 경작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약 500,000톤 정도의 생산량으로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이며 엄청난 생산량으로 세계 커피 가격에 가격파괴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 스웨덴 (Sweden) 

 차와 커피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하여 끊이지 않는 논쟁이 일자 스웨덴 국왕 쿠스타프3세(Gustav Ⅲ, 1746년~1792년) 자신은 커피만을 마시면서 궁중 의사에게는 차만을 마시게 하였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의사가 83살까지 장수를 하였고 왕 또한 의사와 같은 나이까지 장수하였다. 물론 현대 의학실험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당시의 유럽사회에 커피를 보급시키게 된 주요한 이슈(issue)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관식 복장 차림의 구스타브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