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France) : 1714년경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전래된 것은 1714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 한 그루를 선물하여 왕실의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왕실은 이미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커피음료에 매료되어 있었다. 커피에 설탕을 타 마시는 습관도 바로 이때 왕실의 여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설탕 대신 꿀을 섞어 마시기도 하였다.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정 온실에서 귀하게 재배되던 커피나무가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Martinique)섬에 근무하던 가브리엘 끌류(Gabriel de Clieu) 대위가 조국을 방문하였다가 돌아가면서 루이 14세를 설득하여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에 커피묘목 몇 그루를 갖고 가기를 원하였지만 되돌아가는 길은 험난하였다.
해적을 만나기도 하였고 폭풍우 때문에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하였다. 항해도중 물이 떨어지자 그는 자신에게 할당받은 식수마저도 커피묘목을 살리기 위하여 커피나무에 줄 정도로 커피묘목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소유하였다. 결국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에 간신히 도착하였을 때 가지고간 여러 묘목 중 어린 묘목은 모두 죽고 단 한 그루만 겨우 살릴 수 있었는데, 남은 한 그루의 커피묘목을 1720년 마르티니크 섬에 이식하고 재배를 시작하여 1777년에는 1,900만 그루가 되었다.
마르티니크 섬에 이식된 커피는 그 후 프랑스령 기아나(Guianna)로 옮겨져 울창하게 번성하였으며, 이 한 그루의 묘목을 기념하기 위하여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이름을 인용하여 이 지역에서 재배된은 커피를 '부르봉 커피'라고 불렸다.
이후 1723~1852년까지 아이티(Haiti)와 콜롬비아(Colombia), 베네수엘라(Venezuela), 자메이카(Jamaica),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 확산되어 프랑스의 커피 시장 지배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1793년 아이티의 노예폭동으로 인하여 프랑스는 커피시장 지배력을 상실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한 유럽 식민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부터 가이아나(구 영국령:1966년 독립), 수리남(구 네덜란드령:1975년 독립), 프랑스령 기아나로 나누어진다. 1499∼1500년에 에스파냐인들이 기아나의 땅을 밟았으며, 그 후에 네덜란드안둘이 식민지 경영에 나섰다. 1650년경에 프랑스가 카이엔 부근을 차지하였고, 19세기에 들어서부터는 영국이 현재의 가이아나 지역을 네덜란드로부터 빼앗았다.
기아나 지방은 북부의 해안평야, 중앙부의 구릉지대, 남부의 기아나 고지로 구분되며, 열대몬순기후에 속한다. 대서양으로 흐르는 여러 하천의 하류지역(특히 수리남의 파라마리보 부근)은 세계적인 보크사이트 산지이다. 해안평야는 습윤한 적도우림기후를 이루고 있으나, 내륙은 사바나기후로 캄푸스(campos)라고 하는 소림(疏林)이 발달했다. 주요 산물은 사탕수수 ·쌀 ·커피 ·카카오 ·바나나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아나 [Guian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수리남 (Suriname) : 1714년경
네덜란드는 1718년, 네덜란드령 기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이래 유럽에서 커피 음다습관이 인기를 끌면서 커피나무는 황금알을 낳는 식물로 부상했다. 당연히 커피나무를 지배하려는 유럽 열강들의 피터지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커피는 커피벨트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만 재배된다. 이것은 북위 25도와 남위 25도 사이의 지역으로서 커피재배에 적당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는 곳을 일컷는다. 따라서 유럽제국은 열대지역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아 돈이 되는 식물을 심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에 앞장선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동방무역에 공을 들였다. 그들은 무역로에서 예멘을 경유했고, 동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수마트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네덜란드는 커피 수입과 재배에 가장 먼저 착수한 국가였다. 그들은 1696년과 1699년, 인도 서안에서 커피나무를 가져다가 자바와 수마트라에 각각 심었다. 이후 이 지역의 커피 플랜테이션은 예멘을 능가하는 산지로 성장했다. 1706년에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몇 그루의 묘목이 자바에서 네덜란드로 보내져 암스테르담 식물원에서 재배됐다. 이렇게 예멘, 인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로 전해진 품종은 아라비카종 중에서도 티피카(Typica) 그룹이었다.
◆ 콜롬비아 (Colombia) : 1727년경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1727년경으로 사랑에 빠진 프랑스령 기아나(Guiana) 총독 부인이 포르투갈 연인과 헤어질 때 그에게 보낸 꽃다발 속에 커피나무를 숨겨 선물한 것이 시초이다.
포르투갈 장교 프란시스코 드 멜로 팔헤타(Francisco de Melo Palheta)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의 기아나(Guiana) 영토분쟁 중재를 성공시키고 이것을 기회로 커피나무 묘목을 반입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여 내연관계를 맺고 팔헤타(Palheta)가 떠나올 때 그녀로 하여금 부케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넣어 그에게 선물하게 하였다. 그는 이것을 콜롬비아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한 후 자신의 영토인 브라질 파라(Para)에 심었고, 이것이 확산되어 브라질은 커피 대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콜롬비아와 브라질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속에서 잘 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콜롬비아 공화국, 줄여서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보고타이다. 카리브해는 북쪽, 베네수엘라는 동쪽, 브라질은 남동쪽, 에콰도르와 페루는 남쪽, 태평양은 서쪽, 파나마는 북서쪽에 접해 있다.
◆ 브라질 (Brazil) : 1727년경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1727년경으로 사랑에 빠진 프랑스령 기아나(Guiana) 총독 부인이 포르투갈 여인과 헤어질 때 그에게 보낸 꽃다발 속에 커피나무를 숨겨 선물한 것이 시초이다.
포르투갈 자욕 프란시스코 드 멜로 팔헤타(Francisco de Melo Palheta)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의 기아나(Guiana) 영토분쟁 중재를 성공시키고 이것을 기회로 커피나무 묘목을 반입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프랑스 총독 부인을 유혹하여 내연관계를 맺고 팔헤타(Palheta)가 떠나올 때 그녀로 하여금 부케 꽃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넣어 그에게 선물하게 하였다. 그는 이것을 콜롬비아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한 후 자신의 영토인 브라질 파라(Para)에 심었다. 이것이 확산되어 브라질은 커피 대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브라질은 토양과 기후가 커피재배에 적합하여 곧 세계에서 첫 번째 가는 커피 생산 국가가 되었다.
아이티의 노예폭동, 스리랑카 실론의 커피녹병 피해 등으로 인해 프랑스와 영국이 커피 시장에서 지배력이 상실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브라질이 커피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822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브라질은 커피 경작지를 확대하여 19세기 중반에는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세계소비량의 75%정도를 브라질이 공급하면서 커피 카르텔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활을 하여 출하량 조절로 커피 가격을 조절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커피 카르텔이 붕괴되고 수출국과 수입국, 양자간에 의한 국제커피협정에게 그 주도권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