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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영화 편집하며 마시는 커피는?

by 커피쟁이쏭주부 2025. 4. 8.

이번 글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봉준호가 영화 편집 과정에서 커피와 맺는 특별한 관계를 조명한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커피는 그의 정서와 리듬, 편집 감각을 조율하는 동반자이자 창작의 촉매로 기능합니다. 컷과 컷 사이의 감정을 다듬고, 화면 너머의 공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커피는 봉준호 감독의 창의성과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담아냅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편집하며 마시는 커피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편집하며 마시는 커피는?

 

커피는 컷과 컷 사이의 그림자

봉준호 감독이 편집실에 앉을 때, 그의 옆자리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은 늘 커피다.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서 영화를 마주한 채 앉아 있는 그에게 커피는 말 없는 동료이자, 촘촘한 프레임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작은 통로다. “편집은 현장에서 잡지 못한 진실을 마지막으로 사냥하는 작업”이라 말하던 그의 음성 뒤에는 늘 머그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함께 어른거렸다. 그가 마시는 커피는 결코 화려하거나 복잡한 레시피가 아니다. 스타벅스의 벤티 사이즈가 아니라, 검은 머그잔에 담긴 진하고 깊은, 약간은 쓴맛이 강한 핸드드립이다. 그가 선호하는 커피는 대개 에티오피아나 과테말라 원두로, 묵직한 바디감보다는 은은한 산미와 투명한 향이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봉준호는 이 커피를 편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정확히 컷 하나를 결정하기 전 15초쯤 되는 그 짧은 틈에서 한 모금씩 마신다. 이 짧은 루틴은 그의 영화 편집 리듬의 일부처럼 동기화되어 있다.

그에게 커피는 각 장면을 관통하는 리듬을 찾게 해주는 매개체다. 컷과 컷 사이의 공기를 어떻게 정리할지, 배우의 숨결이 어디서 끊기고 이어져야 관객이 진심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 그는 커피의 쓴맛에서 일종의 ‘균형’을 찾는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도, 마더의 지붕 위에서 흐느끼는 장면도, 컷을 고르기 전에 커피의 온기를 입안에 머금고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제일 인간적인 시간”이라 말한 적 있다. 화면 속의 인물들이 극한의 감정을 오가고 있을 때, 봉 감독은 그 감정의 흐름을 정밀하게 꿰뚫어야 한다. 하지만 편집실 안은 너무 조용하고, 너무 고요해서, 이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때로는 무겁다. 그럴 때 커피 한 모금은 감정과 감정 사이, 컷과 컷 사이, 현실과 영화 사이의 완충지대가 되어준다. 그 공간 속에서 그는 다시 감독이 아닌 관객의 눈으로 돌아가, 장면을 낯설게 바라본다. 그렇게 그는 커피와 함께 편집실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깊게 잠수해 들어간다.

 

진한 쓴맛 속의 유머와 공포

봉준호의 영화에는 특유의 블랙유머와 사회적 통찰이 겹겹이 녹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대사나 설정이 아니라 편집의 호흡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것이다. 그는 편집할 때 그 리듬을 어떻게 살릴지를 놓고 끝없이 고민한다. 그 고민의 중심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웃음과 울음 사이, 풍자와 폭력 사이, 현실과 초현실 사이. 이 간극을 가장 섬세하게 다듬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커피다. 그는 편집이 길어지고, 장면 하나에만 수십 번 반복하며 머리를 쥐어뜯을 때에도 커피만은 천천히 마신다. 커피는 그에게 ‘인내의 속도’를 가르쳐준다. 컷 하나를 0.2초 빠르게 자를까, 0.1초 느리게 끌어볼까. 그 미세한 결정을 위해 그는 커피 잔을 천천히 돌리고, 혀끝으로 맛을 느끼며, 커피의 쓴맛이 입 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다음 컷을 눌러보지 않는다.

옥자의 경우, 그는 편집 중 고기와 동물의 경계를 다룬 감정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동물에 대한 감정이 너무 무거워, 자칫하면 그 감정에 휩쓸려 편집이 과하게 감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살인의 추억을 편집할 때는, 의도적으로 쓴맛이 강한 프렌치로스트를 마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직접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을 해 마시며, 마치 그 어두운 장면들을 커피의 농도에 투영시키듯 집중했다고. 그런 쓴맛 속에서 그는 한국의 시골 마을을 둘러싼 살인 사건과, 무력한 경찰들의 얼굴 사이에서 미묘하게 갈라지는 표정을 잡아냈다. 유머와 공포 사이의 균형을 잡는 편집 과정에서, 커피는 감정이 기울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추처럼 기능했다.

이처럼 봉준호의 편집실에서는 커피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서 일종의 ‘정서 조율 장치’가 된다. 커피가 진하면 감정을 절제하게 되고, 연하면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커피가 뜨거우면 시간 감각이 느려지고, 미지근하면 리듬이 단단해진다. 편집실의 온도와 컷의 길이는 무관해 보이지만, 봉준호는 그 사이의 미세한 연관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컷 하나를 두고 2초간 정적이 흐를 때, 그 정적 속에 피어오르는 커피향이야말로 그의 영화의 공기다.

 

영화의 온도를 정하는 비의식적 의식

봉준호는 스스로를 "매우 의식적인 감독"이라 말한다. 그는 장면의 구도, 배우의 동선, 음악의 타이밍까지 철저하게 계획한다. 그러나 편집실에서의 그는 오히려 반대로, ‘비의식적’ 상태에 자신을 맡기려 한다. 계획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감각의 흐름을 믿는다. 그 흐름에 접속하기 위해 그는 의식적으로 '습관'을 만든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컷을 고르기 전, 컵을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컵받침을 지탱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이 동작은 마치 명상과도 같다. 이때 커피의 온도는 중요하다. 너무 뜨거우면 감정이 날카로워지고, 너무 차가우면 리듬이 무뎌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화는 감정의 온도를 맞추는 작업”이며, 커피는 그 온도를 스스로 테스트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편집실은 외부와 단절된 시간 속에 존재한다. 봉준호는 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영화의 내면을 끝없이 탐색한다. 창문은 빛을 거의 들이지 않고, 시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커피가 유일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다. “커피가 식었다는 건, 내가 한 장면에 너무 오래 갇혀 있다는 신호다.” 그는 커피의 식는 속도로 편집의 속도를 자각하고, 커피의 양이 줄어드는 정도로 영화가 어디쯤 왔는지를 체감한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될 즈음, 그가 소비한 커피의 잔수는 대개 장면 수와 비슷하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기생충이 완성될 때까지 마신 커피의 양은 정확히 432잔이었다는 후문도 있다. 물론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농담 속에는 편집이라는 고된 여정 속에서 커피가 지닌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편집이 끝난 후에도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영화와의 작별을 고한다. 그 장면이 최종 컷으로 들어가는 순간, 커피는 비로소 역할을 다한다. 그는 그 커피를 ‘영화의 유언’이라 부른다. 그만큼 커피는 그의 작업 과정에서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정서적 매듭이다. 봉준호의 영화 속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현실보다 더 선명하고, 감정이 직조된 듯 정밀한 이유는 어쩌면 그 컷마다 숨겨진 커피의 온기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의 편집실에는 필름 대신 커피 향이 떠다니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늘 한 모금의 쓴맛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봉준호는 커피를 마시며 영화의 결을 다듬고, 감정을 봉합하고, 결국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